
오래전.
이 외수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의 일입니다.
2007 년. 당시 나로서는 인사아트센터 5층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앞두고 있었고
나이50에 첫 개인전 인데다가 물질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녹녹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지요.
전시가 두어 달 남았을 즈음 생불여사(生不如死) 의 마음으로 선생님을 뵈러 올라갔습니다.
박 목수 왔냐.
예.
걷자.
예.
화천 감성마을 주변을 선생님이 앞서고
서너 걸음 뒤에 내가 따라갔지요.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선생님이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여기는 뻐꾸기가 없어 .
예.
그렇게 그날의 화천 방문은 끝났습니다.
돌아와서 며칠 머리를 앓다가 선생님이 내려주신 선 답의 풀이를 시작했습니다.
뻐꾸기.
본디 제 둥지가 없습니다.
때까치. 멧새. 할미새. 종달새 등의 둥지에 알을 낳고 사라지는 탁란 방식이지요.
그렇게 뻐꾸기가 탁란 해 두면 오묘하게도 원래 둥지의 알 보다는 2~3일 일찍 뻐꾸기 알이 먼저 알에서 나와 곧바로 하는 행동이 숙주 왜곡입니다.
숙주왜곡(宿主歪曲).
쉽지 않은 이야기 인 듯합니다.
숙주왜곡 이란 말을 박 목수 방식으로 풀어 보겠습니다.
엄마 나야 .
우리 생활 속에 나의 그것들을 외부의 불특정 침입자로 부터 보호하기위해 안전장치를 해 둡니다.
생활 속에는 하 많은 안전장치가 있으나 아파트 현관문을 하나 예로 보겠습니다.
통상 지킬 것이 많을수록 아파트 현관문은 견고해 집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견고한 현관문도
엄마 나야.
이 한 마디에 세상의 모든 문이 부드럽게 열립니다.
엄마 나야.
(물론 세상의 모든 상황에 예외는 있습니다. 여기서 예외는 예외로 남겨두고 보편적 이야기를 합니다.)
행위자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진짜가 아닌 가짜가 가능한 진짜에 가깝게 흉내를 거나 기만하는 행위를 통 털어 숙주왜곡이라 보고 뻐꾸기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뻐꾸기 새끼가 알에서 나와 어미 새 에게 제 새끼로 착각 할 만 한 온갖 “엄마 나야” 행위를 시작 합니다. 여기서 통상의 인간들은 도덕과 윤리문제에 부닥뜨립니다.
통상의 도덕과 윤리.
위와 같은 뻐꾸기의 행위를 인간적 시각에서 보면 사기에 해당 할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원론으로 돌아가 살펴보면
뻐꾸기가 탁란 함으로써 그 탁란 받아 키워낸 숙주 새가 멸종을 했다면 자연 순환 구조측면에서 보아도 자연의 이치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으나 아직 까지는 뻐꾸기도 건재하고 그 여러 숙주 새들도 건재한 걸로 보아서 애당초 숙주 새들이 탁란을 숙명으로 타고 났다면 문제가 좀 풀립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생불여사의 마음으로 선생님을 찾아 뵐 때로 말입니다.
물론 당시 내가 방법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일반적 사고를 지녔던 나로서는 그렇게 온갖 방법 동원해서. 꼭 꿈을 이루어야 만 하느냐 라는 도덕적 난관에 봉착한 것 이지요.
이리저리 문제들이 너무 버거웠던 나머지 꿈이고 뭐고 다 걷어치우고 낭인 모드로 그냥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좌절욕구에 시달렸었지요.
꿈을 이룬다는 건 그것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꿈을 꾸게 되고 또 다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끝없는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또 다른 시작에 불과 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서울역 앞을 지나다가 세상 다 놓고 서울역 노숙자로 사는 것 보다는 힘들지만 그래도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당시 후견인을 해주셨던 선생님이 보았을 때.
생에 첫 전시를 앞두고도 온갖 문제들을 홀로 오롯이 해결 하려고 만하는 내게 뻐꾸기라는 해법을 주신 겁니다.
나이 오십에 첫 개인전이라
당시 사회 분위기로는 오십이면 뒷전에 물러 날 나이.
이후 뻐꾸기 전법으로 여타 문제들을 해결하고 드디어 첫 전시를 해 냅니다.
뻐꾸기 전법. 호 . 복잡하게 생각 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할 수 없다고 생각 했거나. 할 수 없었던 그 때 상황들은 지나고 나서야 답이 보입니다.
돌아보면 그 때 그것들의 해결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눈앞의 조건들을 보다 많이. 보다 완벽하게. 해 내려는 욕심이 일을 그르쳐 버린 것 이지요.
뻐꾸기의 생존 비법 그 첫 번째
숙주왜곡.
숙주가 존재 하려면 기생물이 있어야 합니다.
기생이라 하면 부정적 시각이 먼저 자리를 잡겠지만 여기서는 기생을 다른 방법으로 풀어 봅니다.
기생하면 논개가 떠오르지요 그런데 논개사당에 보면 산홍(山紅) 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보이는데 산홍의 시입니다.
1905년 당시 을사늑약에 서명한 을사오적 중의 한 사람. 내무대신을 지내고 있던 이지용이 산홍에게 첩이 되어 줄 것을 권하자 그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논개사당을 찾아 지은 시 라 합니다.

내용을 보면
논개는 무언가 일을 하고 죽었는데 자신은 비굴하게 살아남아 이지용 나부랭이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음이 한심스러워 피리와 북소리 따라 아무렇게나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박 목수가 하고 싶은 말은 기생이라 해도 아무나 숙주로 삼지 않는다는
숙주는 숙주다워야 하고 기생은 기생다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寄生과 妓生이 분명 다른 말 이기는 하나 숙주가 없이는 존재가 불가 하다는 축면에서 같은 맥락으로 본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숙주와 기생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가 누구누구의 숙주인 동시에 누구누구에게는 기생물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가족관계를 인용 해 보면
아버지는 내게 숙주이나 할아버지 에게는 기생물 이었지요.
이렇듯 숙주와 기생의 관계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아서 서로 물리고 물려서 돌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대분망천(戴盆望天) 이라 합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는 의미 이지요
우리가 그 어떤 일을 몰라서 못하기 보다는 너무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 우선 일겁니다.
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노라니 문득 하늘이 그리워 고개를 드니 동이는 땅에 떨어져 버립니다.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다지 많은 기술과 그다지 많은 철학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정말 원하는 것 이라면 나머지는 내려놓아야 그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경당문노(經當問奴) 농사짓는 일은 노비에게 물음이 옳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어렵게 정의를 내리고 지금은 기생물에 불과하나 언젠가는 부끄럽지 않은 숙주로 커 갈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해 놓고 비굴하든 비굴하지 않던. 결국은 모양 나는 숙주가 되기 위해 아직도 생불여사(生不如死)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는 있습니다.